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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수업/#퀀트・챠트투자일지

[시간과 정성 36, 37일차] [자전적에세이] 2029년 (퀀트투자로 3억모으기) | 연수익률 +18%, 최대손실률 -8%

by 생활의단순화 2023. 9. 13.

{알림}

 

퀀트서비스 특성상(젠포트) 당일 백테스트결과는 나오지 않으며한국투자증권 MTS 손익추이 결과의 경우 역시 당일 결과는 조회가 안됨. 따라서 어제 기준 실전투자현황 및 백테스트 결과를 다음날 올리도록 하겠음

 

(오늘 하루 시간과 정성 및 ★자전적 에세이★  게시글 맨 하단부 기재)

 

 

 

 

 

☐ 나 자신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낮에는 국・공립학교 교직원
밤에는 방구석 퀀트투자자
한 손으로 부를 일구다.

by TerryKim

 

 

☐ 돈을 모으는 궁극적인 이유 3가지

 

첫째, 언제 어디서나 가족을 지키고 싶다.

 

돈이 없으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주거환경에 나의 가족을 노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아직은 없지만 미래에 생기게 될) 소중한 자식을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돈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무시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다. 따라서 돈이 나와 나의 가족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내가 원하는 일만 하고 싶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싶다.

 

돈이 없으면 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내가 맡기 싫은 업무를 맡을 수 있으며, 이상한 직장동료 및 상사와 엮여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돈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셋째,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나의 목표는 자기계발 작가가 되는 것이고 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경제적 자유를 얻고 성공하게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책과 강연을 통해 어둠을 비추는 등불로서 살아가고 싶다.

 

 

 

 돈을 모으는 궁극적인 이유 3가지에 기반한 중장기 목표

  ❍ 투자: 돈의 시나리오

    - 실전투자근거 (백테스트 결과*)

      ※ 백테스트(Backtesting)란, 현재 생각하는 전략을 과거부터 실행했을 때 어떠한 성과가 발생하는지 테스트해 보는 과정임. 과거 데이터 기반으로 전략을 실행하는 퀀트 투자에 있어서 이는 핵심 단계라고 볼 수 있음

※참고: 해당 게시물을 스마트폰으로 볼 때 사진이 다소 작게 보여질 수 있는데, 사진을 터치하면 화면크기를 원하는 크기로 조절할 수 있음

 

▲▲▲ [ 사진 1 ] 퀀트 추세 단타 전략 백테스트 결과 (젠포트) | 한국형 올웨더 자산배분 미적용 | 23. 9. 12.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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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2 ] 퀀트 추세 단타 전략 백테스트 결과 (젠포트) | 한국형 올웨더 자산배분 적용 | 23. 9. 12. 기준 ▲▲▲

 

※ [ 사진 1 ] 전략과 [ 사진 2 ] 전략은 근본적으로 같은 전략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자산배분이 적용되었는지 여부임. 현재 실전투자 중인 전략은 자산배분이 적용된 [ 사진 2 ] 전략임

 

 

 

▲▲▲ [ 사진 3 ] 퀀트 성장 가치 소형주 중장기 전략 백테스트 결과 (퀀터스) | 2023. 8. 31.기준 ▲▲▲

 

※ [사진 3] 퀀터스 프로그램 특성상 백테스트를 매일 진행해도 결과값이 매번 바뀌지는 않음. 일정 주기에 한 번씩 갱신이 되는 방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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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3.1 ] 퀀트 성장 가치 소형주 중장기 전략 백테스트 결과 (퀀터스) | 2023. 8. 31.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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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3.2 ] 퀀트 성장 가치 소형주 중장기 전략 백테스트 결과 (퀀터스) | 2023. 8. 31.기준 ▲▲▲

 

 

 

▲▲▲ [ 사진 4 ] 가상화폐 초단타 전략 백테스트 결과 (개인 클라우드PC 서버) | 2023. 9. 11. ▲▲▲

 

 [사진 4] 는 9. 11. 백테스트 결과 화면이지만, 9. 12. 백테스트 결과도 이와 동일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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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5 ] 가상화폐 초단타 전략 백테스트 결과 중 CAGR(연복리수익률)로 환산한 값 ▲▲▲

 

 

☐ 투자목표

  ❍ [48세까지] 2023. 7. ~ 2029. 6. 퀀트주식/가상화폐 투자로 종잣돈 1억 → 3억 만들기

    - 산출근거: 2023. 8. 기준 보유자산(10,600만 원) → 목표 명목수익률(+18%) → 6년 후 → 3.70억 달성

      ※ 퀀터스 파이어 계산기 사용

[ 사진 6 ]

 

 

  ❍ [54세까지] 2029. 7. ~ 2035. 6. 퀀트주식/가상화폐 투자로 종잣돈 3억 → 9억 만들기

    - 산출근거: 2029. 8. 보유 예상 자산(37,000만 원) → 목표 명목수익률(+18%) → 6년 후 → 10.83억 달성

      ※ 퀀터스 파이어 계산기 사용

[ 사진 7 ]

 

 

  ❍ [60세까지] 2035. 7. ~ 2041. 6. 퀀트주식/가상화폐 투자로 종잣돈 9억 → 30억 만들기

    - 산출근거: 2035. 7. 보유 예상 자산(108,300만 원) → 목표 명목수익률(+18%) → 6년 후 → 30.08억 달성

      ※ 퀀터스 파이어 계산기 사용

[ 사진 8 ]

 

✓ 공통사항: 연 복리 수익률 +15~18%, 최대손실률 -10% 미만 유지

 

 

 중장기 목표에 기반한 하루 루틴

   04:00 ~ 05:30 청소/샤워/아침루틴

   05:30 ~ 08:30 퀀트 전략 수정보완 및 백테스트/코딩공부

   08:30 ~ 08:50 출근준비(오디오북 듣기)

   09:00 ~ 18:00 업무시간

    - 주중 점심시간에 회사 도서관에서 퀀트 전략연구 및 백테스트 진행, 필요시 자기 계발 활동 진행

    - 주말에는 방구석 퀀트 백테스트 진행. 단, 식사 시 되도록 가족과 함께 보내며 가족을 위해 요리 만드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함

 

   18:10 ~ 19:00 저녁식사 및 투자서 읽기

   19:00 ~ 22:00 퀀트 전략 수정보완 및 백테스트/코딩공부(필요시 자기 계발서적 읽기)

   22:00 하루 복기

   22:30 ~ 04:00 취침

    ※ 하루 자기 계발 가용시간(8시간)

 

 

 

☐ 실전투자 매매현황

▲▲▲ [ 사진 9 ] 퀀트 추세 단타 전략 실전매매 결과 (키움증권) | 2023. 9.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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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10 ] 젠포트 추세 단타 전략 실전매매 포트 운영 현황 | 2023. 9.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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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11 ] 젠포트 추세 단타 전략 실전매매 포트 거래내역 | 2023. 9. 11. ▲▲▲

 

 [사진 11] 특이사항이 있다면 보유 종목 중 운이 좋게도 '목표가 매도'한 종목이 세 종목 있었음. 아울러 매수종목도 다른 날에 비해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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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12 ] 젠포트 추세 단타 전략 실전매매 포트 거래내역 | 2023. 9. 12. ▲▲▲

 

 [사진 12] 을 보면  [사진 11] 과 마찬가지로 '목표가 매도'한 종목이 있었음. 그 외 특이이사항 없음

 

 

 

▲▲▲ [ 사진 13 ] 퀀트 강환국 성장 ・ 가치 소형주 중장기 (변형) 전략 실전매매 결과 | 2023. 9. 12. ▲▲▲

 

 

 

▲▲▲ [ 사진 14 ] 가상화폐 초단타 전략 체결알림 (개인 클라우드PC 서버) | 2023. 9. 11. ▲▲▲

 

 [사진 14] 가상화폐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마켓타이밍) 현금 보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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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15 ] 가상화폐 초단타 전략 체결알림 (개인 클라우드PC 서버) | 2023. 9. 12. ▲▲▲

 

 [사진 15] KRW-BTC 종목 '돌파매수'함.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이 좋지 않기에 조만간 전량매도 후 현금보유할 확률 매우 높음

 

 

 

  ❍ 오늘의 시간과 정성 | 2023. 9. 12. ~ 13.(수)

    - 자기계발(부자마인드)

 

      ・ JB김종봉 '세상을 이기는 97:3의 투자 법칙' 과제 수행 (1주차)

        ✓ 블로그 개설 ( 티스토리: https://terrykim.tistory.com/ )

        ✓ 필명 만들기 ( 생활의단순화 )

 

 

        [작성중] 자기소개 ( 1년 단위로 변경된 내용 수정 ・ 보완 ) |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 예정

 

 

암흑기 [2013. 4. ~ 2017.]

“왜 살아났니......?” 

 

 

 

내가 병원에 실려왔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 이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그저 눈만 깜빡였다. 사실 그 당시에는 사고를 당한 지 얼마되지 않아 스스로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감정은 어머니의 말씀에 대한 혼란스러움에서 이내 실망감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타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누워있는데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급히 달려오신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이 ‘왜 살아났니?’라니......

사실 사고를 당하기 3년 전에는 뉴질랜드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여느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한국에서 졸업할 즈음, 대학교에서 1년 조기졸업을 해서 남은 1년을 어떻게 하면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기왕이면 나의 전공인 호텔경영학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고 드디어 오클랜드시티에 있는 규모가 꽤 큰 태국 Zap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레스토랑 근처에 있는 컬리지에서 마케팅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학업을 병행하던 중 같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태국 전통악기인 ‘킴(khim)’을 연주하고 있는 어느 여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내 인생의 첫 사랑이 되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키워나갔고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한 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태국으로 돌아가서 가정을 이루면서 살자는 제의를 했다. 나는 그녀의 제의에 선뜻 응했다. 물론 내가 꿈꾸던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이에 대한 후회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녀를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태국행 비행기를 탔고 태국에 있는 골프장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매니저로 일하면서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수술 대기실 앞에서 잠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던 중 곧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을 들었고 곧이어 마취제의 약기운에 취해 서서히 잠들었다. 어머니의 첫 마디를 곱씹으면서......

내가 깨어 났을 때에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뒤였다. 의식을 다시 되찾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 오시더니 무언가 머뭇거리셨고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일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말씀 하셨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오른팔 전체가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의사 선생님께 물었더니 그제서야 나한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오른팔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그제서야 처음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왜 어머니께서 나한테 그렇게 말씀 하셨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 했다. 30대 젊은 나이의 아들이 오른팔이 없는 채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당신으로서는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없으셨을 테지.

그런데 의사로부터 한쪽 팔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신기하게도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보통 나처럼 인생이 바뀔 정도의 극적인 일을 겪으면 절망 하거나 정신이상이 되는 것이 정상일 텐데 나는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은 기분이였다면 사람들은 믿을 수 있을까? 마치 이미 이렇게 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런데 입원한지 며칠 후  부모님으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입원비가 없어 한국에 있는 집을  급하게 내놓으셨다는 것이다. 입원비가 마련되는대로 바로 짐싸서 한국에 가야 한다고 하셨다. 다행히도 급매로 싸게 내놓으셔서 집이 수일 내로 팔렸고 잔금을 치르고 부랴부랴 쫓기듯이 침대에 누운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하자마자 외갓집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의 어느 대학 병원에 급하게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배정받아 누워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앞으로의 내 인생은?’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냉정을 되찾으려 했지만 나 자신이 마치 끝없는 미로 앞에 내몰린 생쥐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마치 아무렇지 않은 양 지극히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정상적이지 않은 나를 향해 조소어린 웃음을 짓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얼마 지나 내 몸 상태가 호전되자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첫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에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고, 어떤 이는 나를 정말 불쌍하게 보았다. 이 때 갑자기 어머니께서 처음 나를 보았을 때 왜 살아났냐고 말씀하셨던 일이 문득 생각났고, 나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나도 모르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옆에서 나를 부축하시던 어머니는 애써 아무렇지 않게 행동 하셨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그날 간신히 치료를 받고 병실로 돌아왔다. 

그러던 6월 어느 날 오후 하루종일 병실에 누워 있는데 이대로 억울하게 살기 싫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장애인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 해보니 공무원이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것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께 공무원 수험교재를 사달라고 부탁 하였고 아버지께서 교재를 가지고 오시자마자 바로 그 날부터 병상에 앉아 공무원 공부를 시작 하였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보고 있던 도중 어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은 바로 ‘진정으로 합격하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 집단으로 들어와서 같이 공부를 하라 (환경설정)’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 하자마자 일단 어머니께 서울로 상경해서 공무원 공부를 할테니 딱 1년만 지원해 달라고 말씀 드렸으나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 당했다.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로 나의 절실함과 진지함을 보여 드리고자 3일 동안 단식 하면서 공부를 하였고 마침내 부모님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내었다. 이때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은 장애인인 내가 서울에 홀로 남겨져 공부를 하면 남들의 시선과 편견 때문에 많이 힘들거라는 얘기였는데, 바로 그러한 연유로 내가 처음 부탁을 했을 때 완강하게 반대 하셨다고 말씀 하셨다. 

2013년 9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채비를 마치고 무작정 서울 노량진에 상경했다. 방을 잡고 학원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공무원 공부를 시작 하였다. 밥을 먹을 때에도 공부하고 걸어 다니면서 암기하고 화장실에서도 공부하던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 있던 남녀 일행 중 한 남학생이 옆에 있던 여학생에게 웃으면서 “너 공부 안하고 불합격하면 저기 저 장애인이랑 결혼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공부하던 책을 계속 보면서 학원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 내가 합격하는 길만이 나를 모욕했던 사람들에게 내 자신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에 마음속에 맺힌 설움과 치욕을 잊고자 더욱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26일 7급 공무원 시험에서 단 몇 점 차이로 낙방하였다. 시험 결과를 어머니께 알려드리고 나니 한 동안 말씀이 없으셨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하시는 말씀이 더이상 나한테 지원해줄 돈이 없다고 하시는 것 이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서 부모님께서 머물고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다행히도 평소에 부모님을 좋게 보시던 어느 신부님께서 아버지께 일자리를 제의 하고 거처를 마련해 주신지라 당분간은 먹고 자는 데에는 걱정이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 공무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지라 계속 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을 걱정해 주신 그 신부님께서 내가 지금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사회복지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당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 생존을 위해 다시 학교에 들어갔던 것 같다. 무언가라도 해야 나 자신을 놓아버리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밖에 나갈 때에는 의수(인공 팔)를 달지 않고 외출을 한다. 장애가 죄는 아니기에 내 모습 그대로 장애를 숨기지 않고 외출을 한다. 물론 때로는 차별과 멸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만 -때로는 놀림도 받는다- 오히려 이러한 부당함을 내 삶을 성장 시키는 일종의 자양분으로 삼고 나를 채찍질 한다. 어떤 날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집 문밖을 나가기 조차 두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 가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신이 나에게 ‘내가 얼마나 배짱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하려는 것임을 알기에 특히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었을 때, 그 과정에서 내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들을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기에...

 

 

 

방황기 [2017. ~ 2018.]

 

나를 알고자 사회복지과에 진학하였고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후회없이 공부에만 매진했다.

 

졸업 후 신부님의 추천으로 강원도에 있는 어느 사회복지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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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계속)

 

 

※ 이번주 토요일 (9. 16.) 까지 자기소개 (자전적 에세이 형식) 완성 예정

 

 

오늘 하루도 경제적 자유를 위해 근접 전을 치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vv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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